당신이 절망하는 이유, 혹시 아시나요? 저는 제가 살아가기로 결정한 이유와 아주 깊은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캄캄하고 어두워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터널을 앞에 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너무나 높아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 절망 앞에 서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절망하는 이유
저는 당신이 왜 절망하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사실 관심도 없습니다. 듣지 않아도 처절하고 그럴만한 배경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절망하는 이유는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이 절망에 이르는 과정은 달라도 절망에 이르게 되면 겪는 느낌은 모두 같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절망에 대해 물어보면 깍아지른 높은 벽인데 오를 만한 손잡이도 없고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높디 높은 곳을 보는 느낌이라고 말하거나, 너무나 길고 어두워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을 앞에 둔 느낌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떠신가요?
흔하디 흔한 나의 절망 스토리
저는 비슷했는데, 스토리는 흔하디 흔했습니다. 회사에서 갑작스런 실직을 당했고, 막상 사회에 내던져지니 나이는 많고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이후 오랜기간 동안 노력을 했으나 노력할수록 스스로의 한계와 위치를 깨닫게 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앞으로 미래에 대해 생각할때 너무나 미약한 내가 원래 원했던 위치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나 요원해 보였습니다.
아니 솔직히 어떤게 되고 싶은지도 몰랐고, 그저 돈 많이 벌고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딜가나 끝없는 비교로 스스로를 한없이 깍아 내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저는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졌고 죽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바로 제가 절망을 마주한 때였습니다. 정말 한없이 어둡고 춥고 무서운 공간,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도 가늠할 수 없는 기이한 공간에 홀로 남겨져 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내가 어디에 도달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해서 한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그런 고통스런 시간이 한없이 이어졌습니다.
살아보기로 하다
정말 딱 죽어야만 끝날 것 같은데 저는 내세를 믿는 사람이라 죽는다고 끝이 아닌 것 같았기에 한번만더 조금만더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정말 매일 미친듯이 걸었던것 같아요. 조금 높다 싶은 산은 그냥 무작정 헉헉대며 올라갔고, 먼길도 일부러 다리가 터지도록 걸었더랬습니다. 머리속에서 울리는 원망과 죽음의 목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습니다. 물론 그래도 그때뿐 극적인 변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명이 내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뭔가가 변화하고 있기는 한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얼마후 여자친구에게 고민을 상담했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적어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명쾌하고 모든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베스트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무 선택도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마치 절망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절망안으로 한발짝 내디디는 느낌이었습니다.
드디어 걸어갈 수 있게 된 느낌이랄까요? 절망에서 벗어났다기 보다는 절망이라는 느낌을 이해한 기분이었습니다. 내 생각이 특히나 미래에 대한 설계가 틀릴수 있음을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지금도 절망이라는 터널을 열심히 한발짝 한발짝 너무 멀리보지 않고 걸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언젠가 어디에든 닿게 될거라 믿으며 그렇게 한걸음에 온마음을 담습니다.
내가 살기로 결정한 이유
제 이야기가 조금 길었는데 들어보시면 별거 없죠? 그런데 저는 나름 힘들었답니다. 주간에 보면 어느날 갑자기 변화가 찾아왔다고 되어 있는데 좀 뜬금없이 느껴지지는 않으셨나요?
당신이 절망하는 이유를 설명하긴 했는데 그럼 제가 이렇게 살기로 결정한 이유는 뭘까요?
저는 미래에 대해 미리 예측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일한 시가 있는데 바로 ‘카르페디엠’입니다.
묻지 마라, 알 수 없는 것을,
나와 그대에게 신들이 어떤 운명을 내렸는지,
레우코노에여, 바빌론의 점술을 시도하지 마라. 무엇이 오든 견디는 게 낫다.
주피터가 더 많은 겨울을 주든 아니면 이번 겨울이 마지막이 되든, 지금 티레니아 해를 약화시키는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현명해져라, 포도주를 걸러 마시고, 짧은 시간에 긴 희망을 잘라내라. 우리가 말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질투하며 달아난다.
오늘을 잡아라, 내일을 믿지 말고.
물론 이 시의 핵심 메시지는 마지막 줄에 있는 “카르페 디엠 (Carpe diem)”입니다. 이는 “오늘을 잡아라” 또는 “현재를 즐겨라”라는 의미로,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는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죠.
하지만 저는 이 시에서 중간에 있는 바빌론의 점술을 시도하지말고 무엇이든 견뎌라, 그러면 그 고민은 티레니아 해를 약화시키는 바위에 부딛히는 파도처럼 언젠가 사라진다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내일을 믿지말고 오늘을 잡으라는 말이 마치 지금의 저에게 하는 옛 사람들의 충고 같이 느껴졌습니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죠. 우리가 아무리 대단해도 미래는 우리 생각대로 가지 않습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말이지요. 우리가 아무리 불행한 미래를 설계한다고 해도 그렇게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인생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몸을 실은 부표 같은 걸지도 모릅니다. 그저 표류하여 흘러갈뿐 거대한 흐름을 조정하기는 불가능하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혼자사는 것이 아니기에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일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사람을 더 만나고, 현재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 그렇게 딱 ‘한걸음’만을 생각하고 그것만 실행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통제할 수 있고 해야하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길가에 흔하게 핀 초목이라 생각하면 오만하게 너무 먼 미래를 설계한다고 망상의 나래를 펼 시간에 산천의 초목들 처럼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오늘 지금 이 시간에 벌어진 일만을 진실이라 믿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길게 말했지만 사실 지금 이 시간에 벌어진 일만이 진실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고통스러워 하는 그 상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지 않을 겁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한걸음’을 내 딛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반드시 달라질 테니까요.
오늘의 절망을 살고계신 모든 분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