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토류 전쟁 총정리 궁금하시죠? 최근 격화되고 있는 희토류는 반도체에 필수품으로 첨단 산업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 자원인데요. 이와 관련된 이권 다툼을 정확히 알려면 배경부터 알아야 할 것 같아서 1부로 미얀마, 로힝야 부족과 관련된 배경편을 준비했습니다.
한줄 요약: 미얀마의 복잡한 현대사는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시작된 로힝야족 문제와 군부 독재, 그리고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얽혀 현재진행형 비극을 만들어내고 있다.
희토류 전쟁, 영국과 미얀마를 알아야 한다
희토류 전쟁에 대해 알려면 우선 배경을 알아야하는데 역사에서 어두운 면을 들추면 꼭 영국이 있던데 이번에도 영국이 등장합니다.
영국의 욕심이 빚어낸 비극의 시작
19세기 영국의 제국주의 정책은 아시아 전역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특히 미얀마(당시 버마)는 1824년부터 1886년까지 세 차례의 영국-버마 전쟁을 거치면서 완전히 영국의 식민지가 됐죠. 영국은 이 지역을 ‘영국령 인도’의 한 주로 편입시켰는데, 이때부터 미얀마의 운명이 크게 바뀌게 됩니다.
영국은 미얀마를 거대한 쌀 생산기지로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실제로 미얀마는 에야와디 델타 지역을 중심으로 비옥한 농지를 보유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죠. 당시 영국 총독은 미얀마 현지인들이 너무 반항적이고 게으르다고 판단했어요. 게다가 불교 승려들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도 끊임없이 일어났고요.
이때 영국이 찾은 해결책이 바로 인도인들의 대규모 이주였어요. 특히 벵골 지방의 무슬림들이 대거 이주했는데, 이들이 바로 현재 로힝야족의 조상들이에요. 영국은 이들에게 미얀마인들로부터 빼앗은 농지를 주고, 행정직과 군대에도 积極的으로 채용했죠. 1871년부터 1911년 사이에 미얀마로 이주한 인도인의 수는 무려 45만 명에 달했다고 해요.
2차 세계대전과 로힝야족의 비극적 선택
1942년, 일본군이 미얀마를 점령하면서 상황이 급변했어요. 일본은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라는 구호를 내걸고, 영국 식민지 체제를 무너뜨리려 했죠. 여기서 미얀마 민족주의자들은 일본을 지지했고, 일본은 이에 화답해 로힝야족이 가진 농지를 미얀마 원주민들에게 돌려주기 시작했어요.
위기를 느낀 로힝야족은 영국 편에 서기로 했어요. 영국은 이들에게 무기를 지원하며 일본군에 대한 게릴라전을 부탁했죠. 하지만 무장한 로힝야족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어요. 그들은 일본군이 아닌 무방비 상태의 미얀마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죠.
특히 1942년 아라칸주에서 벌어진 학살은 미얀마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돼요. 2만 명이 넘는 미얀마인들이 희생됐고, 수백 년된 불교 사원들이 파괴됐죠. 이슬람교도인 로힝야족은 특히 불교 사원과 승려들을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았어요. 이 사건은 단순한 땅 분쟁을 넘어서 종교적, 민족적 갈등으로 확대됐고, 지금까지도 미얀마인들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답니다.
현대 미얀마의 복잡한 정치 구도
1948년 미얀마가 독립하면서 로힝야족에 대한 보복이 시작됐어요. 미얀마 정부는 이들을 ‘불법 이주자’로 규정하고, 시민권도 주지 않았죠. 하지만 인도로 돌아갈 수도 없었어요. 로힝야족의 고향이었던 벵골 지방이 이미 방글라데시로 분리됐기 때문이에요.
1962년부터는 군부 독재가 시작됐어요. 네 윈 장군의 쿠데타로 시작된 군부 통치는 2011년까지 계속됐죠. 이 기간 동안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과 탄압은 더욱 심해졌어요. 특히 1978년과 1991년에는 대규모 군사작전으로 수십만 명의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가야 했답니다.
2015년, 마침내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국민민주연맹(NLD)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어요. 하지만 군부는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했죠. 2008년에 만든 헌법 덕분에 군부는 국회의원 25%를 지명할 수 있고, 국방장관과 내무장관도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었거든요.
특히 주목할 만한 건 중국의 영향력이에요. 중국은 미얀마를 ‘일대일로’ 정책의 핵심 거점으로 보고 있어요. 특히 차우크퓨항 개발 프로젝트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데, 이 항구가 완성되면 중국은 말라카 해협을 거치지 않고도 중동의 석유를 직접 수입할 수 있게 돼요. 게다가 수심이 30m나 되어서 항공모함도 정박할 수 있는 군사적 가치도 높죠.
2021년 2월 1일, 군부는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표면적으로는 부정선거를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로는 중국과의 관계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요. 현재 미얀마는 사실상의 내전 상태예요. 전체 영토의 절반가량이 반군 세력의 통제 하에 있고, 특히 소수민족들이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죠.
특히 2023년은 미얀마 민주화의 중요한 해가 될 것으로 보여요. 군부는 헌법에 따라 2023년 8월까지 총선을 치러야 하는데, 계속해서 선거를 미루고 있거든요. 군부는 아웅산 수치의 정당 등록을 막고, 자신들이 만든 통합단결발전당(USDP)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 하고 있답니다.
이런 복잡한 현대사 속에서 로힝야족 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요. 유엔은 이들에 대한 박해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했지만, 미얀마 군부와 민주화 세력 모두 로힝야족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공유하고 있어서 상황이 쉽게 개선되기는 어려워 보이네요.
어떠신가요? 여기까지 희토류 전쟁 1부 배경편을 살펴봤는데요. 조금 간단하게 요약된 면이 있는데, 후에 반응을 보고 부족하면 보충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