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퇴직자의 불안: 이대로 죽어야 할까?

퇴직, 그것을 경험하면서 불안을 넘어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가? 갑작스런 퇴직과 길어지는 이직, 그리고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불신이 만들어낸 지옥속에서 살아가던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평범한 남자, 세상에 던져지다

정해진 코스대로 정직하게 잘 성장한 사람들은 이직할때 그렇게 불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지 없는지가 불안할 뿐 생계를 위협받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다 블록체인 회사에 입사하여 기획자로 5년을 살았다. 그러나 회사가 어려워져 사직을 하게 되면서, 퇴직자가 되었다.

처음 한달은 어떻게든 될것 같았다. 갑작스런 퇴직이었지만 이력서를 준비하고 각 사이트에 업데이트를 하고 헤드헌터에게서 제안오는 곳을 신중히 검토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아무곳도 지원하지 않았다. 나는 못했다고 표현하고 싶지만 그것이 나만의 생각일 수 있어 ‘않았다’고 표현해본다.

제안오는 곳들이 내 직무와 연관은 있으나 내가 자신있게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고, 관련 직무이지만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내가 현재 가진 능력 이외의 추가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곳이 너무도 많았다.

중견기업은 중견기업대로 면접보는것부터 두려움이 밀려왔고, 스타트업은 순식간에 망하는 것을 지켜본 터라 매출구조가 확실하고 안정적인 자금을 굴리는 곳을 가고 싶었지만 그럴 능력이 되면 스타트업이라는 딱지도 붙지 않았겠지 싶어 막막하기만 했다.

내세울 것은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을 오래도록 경험했고 트랜드의 흐름을 알고 있다는 것, 이것 하나였다. 그래서 더욱 자신이 없었고, 내가 갈 자리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 반도체 공장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시점이라 나도 공장 조공(초보자도 할 수 있는 잡일꾼)으로 커리어를 초기화시켜야 하나…싶은 생각을 정말 진지하게 해보았다.

하려면 못할거야 없지만 인생이 후퇴하는 것 같아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능력을 모두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라 내 인생에서는 후퇴라고 느껴졌다.

매일 도서관에 가서 일자리를 찾아보고 부족한 영어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매일매일이 별차이 없이 그처 아깝게 흘러만 가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내가 뭐하고 있나…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력서를 내기위해 회사들을 찾아볼때마다 자괴감과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세상이 ‘나에게 너같은 건 죽어야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승에는 내 자리가 없는 것만 같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만 같아 숨쉬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시간들이 흘러갔다.


살고 싶었던 어느 퇴직자의 생각

이렇게 말라 죽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최고도 아니고 세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을테지만, 세상이 평범하게 필요한 평범한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세상이 5가지 능력을 바란다면 내가 2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 수많은 회사들중 자신들이 조금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회사에서 모자란 나를 써줄수도 있지 않을까?

보통 이력서에 우리 회사는 이런 비전을 가지고 있고,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을 원한다. 라고 줄줄이 쓰고는 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그동안 몸담았던 곳들도 모든 조건이 충족이 되어서 지원하고 입사했던건 아니었던것 같다.

되는대로 모두 지원해보고, 거기에 맞춰서 해당되는 것은 장점이라고 소개하고 갖추지 못한 능력은 갖추겠다고 말했던 것 같다.

물론 경력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경력이라고 모든 능력을 회사가 요구하는 능력에 다 맞아야만 쓸까?

내가 사장, 혹은 직접 뽑을 사람이라고 생각해봤다.

일단 필요한 능력을 줄줄이 모두 써 놓긴했지만 딱 맞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최대한 비슷한 사람으로 고르지 않을까? 현재 반드시 필요한 기획이라는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 이게 필요하고 나머지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쉬운 정도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봤다.

희망회로 일수도 있지만 내가 회사에서 사람을 뽑으려 공고를 올릴때도 크게 생각하지 않고 올렸던것 같다.

일단 필요한 능력은 다 때려박고, 연락오는 사람들의 이력도 하나하나 맞춰보는 것 아니라 꼭 필요한 능력을 확인하고 면접으로 직접 물어봤던것 같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은데,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든 일해서 먹고 살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같은 사람이 없을까?

아니 있을 것이다. 그동안 너무 보이는 것만 믿은 것 같다.

이제 다시 시작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