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상승 이유 & 외환위기: 천안문 사태부터 IMF 구제금융까지

엔화 상승 이유가 궁금하신가요? 엔화 상승을 이야기 하기 전에 그동안의 역사를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오늘은 천안문 사태부터 IMF 구제금융까지 외환위기 순간 엔화는 어떻게 되었는지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엔화 더미 위에 거대한 엔화로고가 서있고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다.


플라자 합의와 엔화 상승 시작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 회의에서 ‘플라자 합의’가 이뤄졌어요.

이 합의의 핵심은 당시 강세를 보이던 달러화의 가치를 낮추고, 반대로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었죠.

이 합의 이후 엔화 가치는 급격히 올랐어요. 1달러당 240엔이던 환율이 2년 만에 120엔까지 떨어졌죠. 엔화 가치가 두 배나 오른 셈이에요.

이렇게 엔화가 강세를 보이자 일본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썼는데, 그 중 하나가 해외 투자 확대였어요.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렸죠.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들이 주요 투자 대상이었어요.

이런 일본의 움직임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일본 기업들의 투자로 이 나라들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동시에 일본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죠.

이는 나중에 아시아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 됩니다.

천안문 사태와 중국의 환율 조정

    1989년 6월,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가 발생했어요. 이 사건은 중국의 경제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왔죠. 중국 공산당은 경제 개혁을 가속화하며 ‘선부론(先富論)’이라는 새로운 경제 이론을 내세웠어요.

    이 정책의 일환으로 중국은 1994년 1월, 환율을 대폭 조정했어요. 달러당 5.8위안이던 환율을 8.6위안으로 한 번에 올려버린 거죠. 이로 인해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40%나 개선되었어요.

    이 변화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큰 타격이었어요.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죠. 이들 국가의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거예요.

    플라자 협의때 엔화를 중시으로 다양한 나라들의 이권이 오가고 있다.


    한국의 금융 자유화와 엔화 차입

      1990년대 초반, 한국은 금융 선진화라는 이름 아래 대대적인 금융 자유화 정책을 펼쳤어요. 1994년, 김영삼 정부는 24개의 단자회사를 종합금융회사(종금사)로 전환시켰죠.

      이렇게 늘어난 종금사들은 새로운 수익원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해외에서 저금리로 자금을 차입해 국내 기업들에게 고금리로 대출해주는 영업을 시작했죠.

      특히 일본의 저금리 자금을 대거 유치했어요.당시 일본은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제로금리 정책을 펼치고 있었거든요.

      엔화 강세로 수출이 어려워진 일본 기업들은 금융 투자로 눈을 돌렸고, 한국의 종금사들이 그 돈을 받아 국내 기업들에게 빌려준 거죠.

      아시아 외환위기의 시작

        1997년, 태국에서 외환위기가 시작됐어요. 태국 정부가 고정환율제를 포기하면서 바트화 가치가 폭락했죠.

        이 위기는 곧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들로 퍼져갔어요.

        이 과정에서 일본 금융기관들이 큰 타격을 입었어요. 동남아 기업들에 투자했던 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된 거죠.

        야마이치 증권, 홋카이도 타쿠쇼쿠 은행 등 대형 금융기관들이 파산하기 시작했어요.

        일본 금융감독청은 은행들에게 BIS 비율(은행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을 높이라고 요구했어요.

        이에 일본 은행들은 해외 대출금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그 타깃이 바로 한국의 종금사들이었죠.

        한국의 IMF 구제금융 신청

          일본 은행들이 대출금 상환을 요구하자 한국의 종금사들은 위기에 빠졌어요.

          종금사들은 기업들에게 빌려준 돈을 급하게 회수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죠. 결국 30개 종금사 중 29개가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어요.

          이 상황은 곧 국가적 위기로 이어졌어요.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한 거죠.

          결국 한국은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어요.

          IMF는 한국에 5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승인했지만, 그 대가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했죠.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외국 자본에 인수되었고, 실업률이 급증했어요.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는 세계 각국들


          현재의 엔화 상승

            이 시기의 경험은 한국 경제에 큰 교훈을 남겼어요. 외화 차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죠.

            또한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의 중요성도 깨달았어요.

            최근 다시 엔화 가치가 오르고 있어요. 이번에는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차이가 주요 원인이에요.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일본은 여전히 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1997년과 상황이 달라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고, 금융 시스템도 더 안정적이에요.

            그래도 과거의 교훈을 잊지 말고, 엔화 강세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거예요.

            이렇게 엔화의 변동은 아시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과거의 경험을 교훈 삼아, 앞으로의 경제 변화에 더 잘 대비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엔화의 등락에 따라 세계 경제가 영향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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