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자신이 없는 사람 – 죽기 전에 추천하는 글

‘살아갈 자신이 없는 사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죽기 전에 한번은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남기는 글이다.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죽어야만 할 것 같이 느낀다면 꼭 읽어야 하는 글이다.

살아갈 자신이 없는 사람을 위한 죽기 전에 추천하는 글


살아갈 자신이 없는 오늘

오늘은 정보에 대한 글보다는 나를 위한 글을 써볼까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금의 죽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나는 지배하는 감각을 느낀 적이 있는가? 지금의 내가 그렇다.

예전부터 이따금씩 아무 이유없이 이런 생각이 들고는 했다. 전문적인 의사의 소견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공황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세상이라는 포식자 앞에선 피식자 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미친듯이 나를 지배하면서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사실만을 기억하려 애썻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항상 살고 싶다. 지금의 이런 순간이 찾아와도 나는 여전히 살고 싶다.

시궁창에서 뒹굴다 죽어갈 지라도 나는 살고 싶은데 죽어야만 할 것 같은 이 기분과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은 끔찍하리 만치 내 존재를 좀 먹는 듯 하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할 것 같앗다. 그것이 아무 의미 없고, 아무 흥미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일단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앉았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이렇게 글을 마구 싸지르면 아무도 찾지 않는 글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

사람들은 내가 궁금한게 아니라 도움이 되는 정보를 원하는 것이니까.그래서 되도록 이런 글을 쓰지 않으려 했다.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글을 쓰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고통보다 당장 내 안에 가득차서 터질것만 같은 어둡고 끈적한 기운을 이렇게 글을 통해 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이 덜 고통스러워지는 것 같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지금 당장 바뀔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게 됬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 누군가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찾아 봤지만, 딱히 도움이 되는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

하나는 진부한 말이고 또다른 하나는 위험한 말이지만 평소에도 조금씩은 염두에 두던 내용이라 그런지 조금 더 나에게 와 닿는 듯 하다.

세상에 다른 이의 시선을 하나도 신경쓰지 않는 이가 있을까? 글쎄 아무도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만 그 정도의 문제일 뿐인데, 나는 그 정도가 과하기에 내 생명을 유지하는 무언가가 계속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혹시 이런 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중용’이라는 고전에도 과함을 늘 경계하고 균형이 중요하다고 한 것이 생각이 났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산물을 것이다.

어느순간 갑자기 죽어야 할 것 같은 막막함이 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분명 과거부터 내가 생각한 것, 행동한 것들이 쌓여서 터진 것이 지금의 내 상태일 것이다. 즉, 안 좋은 쪽으로 흘러 넘쳐 버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시작 점이 바로 다른 이의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쓴 것은 아닐까? 나는 평소에도 생각이 많은 INFJ이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바 분명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은 많았으나 그것이 현재로서는 너무 많은 자금이 소요되기에 우선 돈을 벌기로 했고, 2023년부터 블로그를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수익이 내 마음에 차는 정도는 아니었던 지라 늘 조급함이 있었다.

그리고 자금을 관리해야 했기에 늘 나가는 돈과 보유하고 있는 돈 그리고 들어올 돈을 늘 머리속에 넣어두고 있었다.

지금은 확실하게 하기 위해 아에 회계를 공부하는 중이다.

그래서 지난 1년간 내 머리 속에는 어디서 돈을 쓰려고 하면 내가 얼마를 벌었는지 내가 뭘 하기 위해 이 행동을 하고 있는지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배달음식을 줄이다 못해 없애버리고, 직접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쓸데 없는 관계도 없어져 버렸다.

이게 1년이 다되어 가다보니 당연스런 일상이 되었으나 나는 늘 배고프고 외로웠던 것 같다. 나에게 돈을 쓰는 것이 죄악처럼 느껴졌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한데 지금 나는 이 정도밖께 못 벌고 있고, 능력도 출중하지 못하니 옷을 사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여행을 가는 등은 나에게 죄악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지난 일년간 카페에서 커피를 사먹은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나를 죄악시 한 것은 맞는 것 같다.

원래 나는 달달한 커피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옷도 좋아하고 놀러 가는 것도 좋아하고, 특히 연극,영화 이런 것을 광적으로 좋아해 혼자서 많이 보러 다녔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아까워 연극은 시사회 이벤트로만 보고 영화도 헌혈을 해서 그걸로 보고는 했다. 물론 이건 나에게만 한정된 제한이었다.

여자친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쓰는 돈은 이상하게 아깝지가 않았다. 그들이 내 자산이라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니가 소중한 아이인 이유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내가 나를 아껴줘야 할 것 같았다.

문득 산모가 임신을 하고 10달동안의 과정과 아이가 3살정도가 되는 시점까지를 빠르게 다른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아이가 무사히 10달을 견디고 성장하는 것도 그저 당연한 일이 아니라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의 손발가락이 10개씩이고 장애없이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며, 그렇게 태어나 3년동안 수많은 위험을 뛰어넘어 건강한 3살이 되기가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가 그 다큐멘터리에 잘 나와 있다.

그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어쩌면 나도 꽤 소중한 존재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봤다.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가 살아서 지금 이렇게 글을 작성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소중한 존재이지 않을까?

세상이 어떻게 이야기 하든, 세상이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든 지금의 내 행동이 나의 미래를 만들 것이라는 것, 그것만이 변하지 않는 진리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미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생각에 매몰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은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도 나를 칭찬해주며 가끔은 선물도 주며 응원해 줄 것인가?

어느 것이 내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인가? 답은 명확한 것 같다.

이제야 조금씩 정상적인 나로 돌아오는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너무 학대한 나머지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된 것 같다.

그것이 습관화 되다 보니 나도 스스로의 행동을 하지 못했고, 곪고 곪아 살아갈 자신이 없는 자기 혐오에까지 온 것은 아닐까?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나와 같이 살 길을 찾는 분이 아닐까 싶다.
처음 이 글을 시작할 때만해도 이 행위가 도움이 될 거라고는 1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신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길 권장한다.

살아갈 자신이 없는 사람 – 죽기 전에 추천하는 글”의 1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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