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기가 죽기보다 싫을 때 : 발버둥의 기록

출근하기가 죽기보다 싫을 때 도움이 될 글을 찾아 오셨나요? 이 글이 도움이 될진 모르겠으나 이런 기분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기록이라는 수단을 통해 살아보려 발버둥치는 글이니 재미삼아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출근하기가 죽기보다 싫을 때 기록을 통해 발버둥쳤던 하려고 한다는 것을 쪼그려앉아 고민하고 있는 여자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통해 설명하는 사진


출근하기가 죽기보다 싫은 오늘

여러분의 하루는 안녕하신가요? 저는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직장인입니다. 가끔 버티기 너무 힘들때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고는 하는데요. 오늘이 그런 날인 것 같습니다.

저는 가끔 아니 자주….사실 매일 출근하기가 두렵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어요.

마치 고요한 숲속에서 있다가 격렬한 토론장으로 끌려나온듯 온갖 생각과 고민들이 머리를 뒤덮는 것을 느끼며 눈을 뜹니다. 마치 생각의 홍수에 빠지는 느낌입니다.

저는 평소에도 생각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생각에 끌려다니지 않으려고 뭐든 기록해 두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록이라는 이름의 발버둥

이렇게 하기 시작한 이유가 있는데요.

내가 왜 괴로운 것인지 괴로워할 만한 생각인 것인지 내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적어내려가기 시작하면 복잡했던 머리가 저절로 정리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뜬금없지만 이게 명상과도 관련이 있더라구요. 명상에는 가만히 앉아서 하는 좌공과 움직이면서 하는 동공이 있는데, 이건 동공에 해당되는 거라고 합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명상을 하면 좋다고 하는 이유는 내 호흡이나 어떤 것에 집중함으로서 내 의식을 현재로 잡아둘 수 있고 뇌로 하여금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을 인식 시킬 수 있기 때문인데요.

뭔가를 써내려가는데 집중을 하면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 되는 알고 있는 문법지식에 맞도록 앞뒤가 맞는 형태로 정리를 한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은 술술 써지지 않고 멈칫멈칫하게 되고 그동안 우리는 이게 망상이라거나 앞뒤가 맞지않는 그저 내 머리가 만들어낸 생각의 찌꺼기 일 수도 있지 않을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게 잘 써지지 않는 생각들을 잘라내면서 기록하다보면 어느순간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지금 당장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기록을 하는 이유는 기록된 결과물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 자체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명상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하게 되면 온갖 잡생각에 더 힘들어 질때가 많고 그렇다고 매일 뛰어다니자니 체력과 의지가 따라주지 않아 금방 포기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록은 그냥 쓰기만하면 되니 장소와 시간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으며 의지가 있으면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수준이라 저에게 맞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괜찮은가?

어느 분이 제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때 썼던 글을 보시고 지금은 어떠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힘이 듭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을 죽기보다 싫을 때가 많고, 살고 싶은 날보다 죽고 싶은 날이 더 많습니다. 가끔은 눈을 감았다가뜨면 세상이 모두 사라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렇지만 평소하던 기록을 블로그에 공유를 하기 시작하면서 피드백을 받기 시작하니 세상에 나혼자만 특별히 이런 것이 아니라는 위안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괜찮아지고 있는 중이라고 믿습니다.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보다 오늘만 같은 내일을 꿈꾸며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니 세상이 조금 덜 가혹해 보이는 것 같아요.


카르페디엠

이런 생각들을 해서 그런지 요즘 읽고 있는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시가 참 마음에 들어요

Tu ne quaesieris, scire nefas, quem mihi, quem tibifinem di dederint, Leuconoe, nec Babylonios temptaris numeros.

ut melius, quidquid erit, pati.

seu pluris hiemes seu tribuit Iuppiter ultimam, quae nunc oppositis debilitat pumicibus mare Tyrrhenum: sapias, vina liques et spatio brevi spem longam reseces.

dum loquimur, fugerit invida aetas: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묻지 마라, 아는 것이 불경이라, 나나 그대에게 레우코노에여, 생의 마지막이 언제일지 바뷜론의 점성술에 묻지 마라.

뭐든 견디는 게 얼마나 좋으냐.

유피테르가 겨울을 몇 번 더 내주든, 바위에 부서지는 튀레눔 바다를 막아선 이번 겨울이 끝이든, 그러려니 하라.

짧은 우리네 인생에 긴 욕심일랑 잘라내라. 말하는 새에도 우리를 시셈하는 세월은 흘러간다.

내일은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

로마 시인 호타리우스의 송시 1.11

우리가 ‘카르페디엠’이라고 알고 있는 구절인데요. 저는 요즘 이 시가 참 좋습니다.

호라티우스가 전하고자 했던 의미는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미래에 대한 믿음을 되도록 줄이라’는 것입니다.

즉, ‘오늘 놀다가 내일 거지가 되면 어쩌지?’라고 걱정해 봤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오늘을 충실히 즐기라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저도 오늘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한 삶을 살아봐야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출근하기가 죽기보다 싫을 때 : 발버둥의 기록”의 2개의 생각

  1. 핑백: 이제 그만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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